Page 104 - artview21 eBook Art Magazine 2023 September issu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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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공간에서 장소에 이르기까지
김성우 (독립큐레이터)
김민호의 사진 작업은 그 지시대상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뒤로 성큼 해서는 대상의 표피-건물의 파사드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
물러나 흐릿해지길 반복한다. 주로 어떤 장소를 기록하는 일 수 있음에도 김민호의 작업에서는 해당 장소와 건축물 외관은 다중의 시점
듯 보이는 그의 사진은 그렇다고 특정 장소가 가진 상징적 맥락이나 가치에 기 과 시선의 누적으로 해체되기 일쑤이다. 최근 작가는 <결>이라는 이름 아래 바
대어 말을 걸지 않는다. 대상은 사진 속 중심에 위치함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다를 촬영한 사진 연작을 진행 중에 있다. 이 역시 하나의 시점에서 찍은 바다-
듯하지만, 동시에 그 장소를 가로지르는 움직임의 잔상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파도의 이미지가 아닌,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촬영한 연속된 이미지를 하나에
시점의 변화가 중첩됨으로 초점은 흐려지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점은 중 중첩하는 식이다. 고요한 바다의 이미지, 촬영한 시간대와 위치조차 모호한 이
심으로부터 그 대상을 감싸 안고 둘러싼 어떤 기류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작가 일련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환기한다. 이를테면, 바다에 얽힌 개인의
고유의 방법론에 기인하는데, 즉 그는 특정 대상을 관찰하는 자신의 시점을 한 기억에서부터 세월호 사건에 이르는 공동의 트라우마까지. 심지어 사진이 출
군데 고정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하나의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 다 력된 종이는 사진을 출력하는 일반적 인화지가 아닌 얇은 순지이기에 이미지는
른 시점에서 기록한 여러 이미지를 누적하여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 더욱 흐려지고, 모종의 정서를 더욱 극대화하는데 일조한다. 이와 같은 장소의
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그의 말과 같이 자신의 사진을 찰나의 명징한 이미지와 이미지는 마치 무언가가 일어날 듯한 풍경과 일어나고 잠잠해진 풍경, 이 둘 사
는 거리를 두게 하며, “실루엣”에 가까운 이미지로 치환해버리곤 한다. 이 어딘가에 부유하는 장소의 이미지가 되어 징후적인 동시에 이미 사건의 일
김민호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드로잉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상을 관 부가 되어버린 풍경과도 같아 보인다.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역설한 이푸 투
찰하며 여러 차례 시점에 변화를 주고,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주하는 것, 안(Yi-Fu Tuan)에 따르면 공간이란 움직임이며, 개방적이고, 끊임없는가능성
그렇게 확장한 초점에 맞추어 이미지를 재현해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을 내재하는 지점이다. 반면, 장소는 정지되어 있는 곳이며, 개인들이 부여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드로잉의 확장된 형식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그의 말은 설득력 가치와 의미가 한곳으로 수렴되어 고정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은 인간
을 지닌다. 작업은 그렇게 완성 이전,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기 이전, 즉 정지 의 직간접적인 체험에 의해 친밀한 장소로 전환되는데, 그때 발생하는 장소적
이전 대상만이 간직한 고유의 움직임을 머금은 상태를 포착하는 행위라고도 할 감각이란 이질적이고 낯선 추상적 ‘공간’에서 구체적 ‘장소’로 전환하는 순간에
수 있다. 한편으로 이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가진 독특한 시선에 연유하여 얻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부유하는 어떤 지점이 공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소실점을 소거한 동양화의 다시점은 개별 시점의 이미지 간이라면, 여기에 개인의 삶이 개입하고 그로부터 사건이 발생할 때, 그 개인의
를 대등하게 하나의 화폭 위에 포개 놓도록 하며, 이동 시점은 관찰자의 움직임 시선을 통해 장소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에서 보자면, 김민호가 담
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도록 하니 말이다. 이렇듯 독특한 방법론으로 취득 아낸 장소, 그 중첩된 이미지로 담아낸 장소의 실루엣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
한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이 그러하듯 특정 시공을 압축하여 하나의 납작 동의 기억과 감정으로 충만했던 ‘장소’인 동시에, 그 명징한 표피로부터 이탈하
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기록-재현해내는 차원과는 다르다. 그의 사진은 대상의 여 끊임없이 그것을 마주하는 이들의 미시적 인식과 해석으로 재정립되길 기다
표피가 선언하는 의미로부터 거리를 둠으로 찰나의 이미지와 실재의 재현 사이 리는 ‘공간’이며, 끊임없이 개별과 마주함으로 갱신하는 사건적 장소라 할 수 있
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사진이라는 광학기술이 재현하는 이미지의 한계를 비 다.
판적으로 사유하도록 하기에 역설적으로 비사진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촬영한 사진이 차곡차곡 누적됨으로 흐릿해진 외곽선이 담지하는 시간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주시하는 대상이 정지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날수 의 종적 궤적과 이동으로부터 획득한 움직임의 횡적 흔적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록, 특히 특정 장소가 담아내는 장소적 가치나 상징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될수 김민호의 사진은 장소의 기표와 기의가 분리됨으로 개인의 해석과 인식에 따
록 그 실루엣이 담아내는 가능성의 폭이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2차 세 라 변모하는 새로운 시공이라 할 수 있다. 해석의 가능성을 위해 기꺼이 눈 앞
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찍은 에 펼쳐진 풍경 위로 우리 자신의 기억과 경험, 지식과 감정을 덧대어 냄으로
<Monument_memorial of Jewish>시리즈에서 그는 기존의 무거운 역사를 ‘공간’은 ‘장소’로 생동하게 된다. 사진 속 이미지는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의 기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채택한 2,711개의 회색 블록의 구조물을 그대로 담아 억이 중첩되고 뒤섞인 사건을 기다리는 공간이 되고, 선형적 시간의 개념으로
내지 않는다. 오히려 촬영자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흐트러져버린 소실점만 부터 벗어나 개인의 시간으로 충만한 장소가 된다. 이는 분절된 개인의 시간으
이 그 윤곽을 희미하게 담아낼 뿐이다. 로 공간과 장소의 개념적 경계를 넘나드는 다중적인 시공이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다각적인 인식을 촉발함으로 그것을 ‘현재와 지금’의 시제에서 지속적으로
이는 광주의 주요 장소를 찍은 사진들(<Monument_전남도청>시리즈, 환기하는 충동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Time_전일빌딩>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들로 해당 사건과 연결하여 미디어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의 이미지는 작품의 제목 없이 그흐릿한 형상만으로는 대
상이 차지하는 역사적, 상징적 가치와 비중을 쉬이 파악하기가 어렵다. 일반적
으로 특정 의미를 담아내고,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상기시키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