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월간사진 2019년 2월호 Monthly Photography 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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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충격이 되다 대전으로 떠난 미국행, 배를 타고 남미로 가서 지낸 9개월과 다시 돌아온 미
국. 이후 노년에 다다르는 여정은 이번 전시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처럼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웬만한 연예인보다 유명하고 작품 가격
역동적일 것임을 암시한다. 전시 초반부에는 그가 젊은 시절 작업한 회화 작
만 무려 1700만 달러(한화 약 170억 원)에 달하는 소변기가 있다. ‘R. MUTT
품이 주를 이룬다. 주목해야 할 점은 복사의 기능을 포기한 채 채색된 인물들
1917’이라고 쓰인 정체불명의 소변기. 미술 관련 서적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이 기괴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붉은 톤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1895
보았을 마르셀 뒤샹의 대표적인 작품 <샘>이다. 그 작품이 그렇게 유명세를
년 발명된 엑스레이의 영향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준 엑스레이
탄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예술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면 사람
의 효과를 회화에서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젊은 시절 목표가 담겨있다. 미술
들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얀 캔버스
관의 계단을 타고 내려와 어두운 조명이 비치는 전시실 속에 배치된 유리 너
에 독창적으로 색을 채우고, 재료들을 모아 유형의 근사한 설치작품을 만드
머에는 그가 작품의 훼손을 두려워하여 만든 미니어처들이 있다. 소형화된
는 등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행위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
작품들을 보다 보면 뒤샹이 스스로의 작품을 얼마나 자식처럼 극도로 아꼈는
진 가공품에 약간의 변화만 준다면? 현재 많은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레
지 이해할 수 있다. 전시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화제의 작품<샘>도 다시 눈여
디메이드라는 방식이지만, 마르셀 뒤샹은 이미 100년 전 보란 듯이 그 방식
겨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 작품 역시 1917년 뉴욕협회에 출
을 도입해 작품으로 툭 던져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기존의 예술에 대한
품된 것을 다시 1950년에 복제한 작품이다. 그리고 <샘>과 <계단을 내려오
관념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그리고 인생 전반에 걸쳐 자기 자신을 뛰어넘으
는 누드(No. 2)>외에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는 영상으로 재현된 <11번가 작
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에로즈 셀라비’라는 새로운 여성
업실의<에탕 도네>>가 있다. 문에 뚫린 2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누
자아를 만들어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고, 심지어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
드 작품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관음증을 유발시킨다. 사후에 공개됐을 때, 생
을 바꾸겠다며 20년 간 체스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지속적인 그의 인생 역정
전 단 4명만 알고 있을 만큼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을 보다 보면 우리에게 왜 충격적인 작품들을 남겨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는 끝까지 평범하지 않은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주요 작품의
배치를 통해 그의 인생 절반에 걸친 작품은 물론이고 마르셀 뒤샹의 삶까지
뒤샹의 숨겨진 보물들
도 보여준다. 그는 생전에 ‘예술이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개인전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열리 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후 50년이 되었으
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가서 마주하는 그의 연표를 보면 작품만큼이나 그의 니 이제 우리가 그 진정한 대중으로서 작품을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다.
인생이 롤러코스터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2차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