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월간사진 2019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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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촬영
어두운 암실 작업에서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가끔은 일부가 훼손되기도 하고 빛 조절에 실패해서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되기 때문이다. 엘렌 캐리는 사진
작업 프로세스에서 하나의 고전이 된 포토그램을 주된 방
식으로 사용한다. 이 과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오직 컬러다.
포토그램을 위해 암실에서 사용하는 여러 색의 필터는 그
에게 캔버스를 채우는 팔레트의 물감과도 같다. 어두운 암
실에서 감광물질인 인화지를 접고 구기고 다시 편 다음 빛
에 반응시켜 결과물을 만든다. 이렇게 진행된 포토그램 시
리즈가 <Struck by light>이다.
그는 ‘21세기 사진은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에 대한 피사체가 된 감상과 감정
정답으로 19세기와 20세기에 고전적으로 행해진 프로세
엘렌 캐리(Ellen Carey)의 작품 제작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
스를 떠올렸다. 사진 발명 시기에 이뤄진 방식이 오늘날 디
의 도전이자 실험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진 속에 담
지털 사진의 근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청색
겨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의미와 서사, 기록은 그의 사진에
화학재료를 사용하는 시아노타입을 개발한 영국 빅토리아
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유형의 특정 피사체 역시 존
시대의 안나 앳킨스(Anna Atkins)와 사진술을 개척한 윌리
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포토그램은 오직 인화지를 비
엄 헨리 폭스 탈벗(William Henry Fox Talbot)에 대해 오랜
추는 빛과 색,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종이가 전부다. 그 과
시간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전적인 암실작업에서 영
정에 있어야 할 유형의 피사체는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과
감을 얻어 그 과정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시켰다. “포토그램
행위로 대체된다.
이 나에게는 카메라다.”는 엘렌 캐리의 말처럼 그는 카메라
“나의 작업에 영향을 준 것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이 아닌
를 이용한 촬영 행위를 과감히 생략했다. 사실 사진은 빛을
나의 경험이다.”는 엘렌 캐리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철저히
이용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니 촬영이라
주관적이다. 사랑, 비극, 아름다움, 놀라움, 만남의 기억, 공
는 관습화된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그것 역시 사진인 셈이
허함 등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기
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엘렌 캐리의 작업은 눈으로 볼
인한다.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다
수 없지만 작품을 위해 행해지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주제
양한 컬러는 그 이야기를 돕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오래
이자 소재인 셈이다.
전 그는 흑백으로 추상적인 포토그램 작업을 했었다. 하지
만 무채색 톤은 작가의 다양한 감정을 대변하기에 역부족
“ 과적이었다. 결국 모든 사진가가 오브제든 인물이든 유형
이었다. 강렬하거나 공허한 감정을 담기에는 컬러가 더 효
의 피사체를 의도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인 것처
엘렌 캐리의 작업은 21세기 사진은 어 럼 그의 작업에 있어서도 가장 어려운 점은 감정이라는 무
떠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 형의 피사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하는가이다.
작된다. 그리고 그 정답을 사진의 발명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아니, 오히려 작품을 보는
초기에 사용된 포토그램 같은 고전적 사람들이 작가에게 질문한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인 방식에서 찾았다. 포토그램을 하나 그리고 색에 담긴 저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이다. 추상
의 촬영과정으로 이해하며 작업한다. 적인 시각예술은 우리에게 이처럼 혼란스러움을 준다. 하
암실 속에서 특정 피사체의 흔적을 남 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나 감정 혹은
상처에 대한 기억을 전적으로 타인이 이해한다는 것이 가
에 노출시켜 자신만의 주관적인 감정 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같은 맥락으로 엘렌 캐리의 작업은
을 표현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그 의미를 굳
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작업의 동기와 접근 방식에 주
목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
기는 대신 감광지를 접고 구긴 다음 빛 “
Ellen Carey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기억들을 재료 삼아 색으로 구현하는 ‘추상사진’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다양한 컬러를 이용해 포토그램 방식으
로 이를 구현한다. 현재 미국 University of Hartford 의 사진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http://www.ellencareyphotograph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