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PhotoView eMagazine 2023.5 issue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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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  LEE Yongsoon : 비 오는 날 On Rainy Days
























































                                                                                                 ⓒ이용순 LEE Yongsoon
                                                                 비 오는 날 On Rainy Days, Archival Pigment Print, 94x141cm, 2022


       비 오는 날


       사진을 찍는 것은 대상과 나의 언어적 소통 행위이며 내가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사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생각에 대하여 받아쓰기에 불과한 것이기에 나는 이
       대상이 온전히 내가 될 때다. 이 것이 전제 될 때 나는 온전히 회색빛 속으로 스          제 그 시절의 나를 통하여 내 본질과 대상이라는 것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며든다.                                                   실은 그렇다, 글로 표현되는 것은 그 것을 읽을 때 이미지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그래서 그림이나 사진은 반드시 문자로 읽혀야만 하는 것이리라.
       그 해 늦가을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나는 그 빗속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나는
       상처를 숨긴 채 비 오는 바닷가로 나가 셔터를 눌렀고 회색빛 하늘과 그 아래             사진이 속삭임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의 달콤함은 오
       숨죽인 형상들이 내 가슴속으로 나열되었다. 나는 종종 하얀 암실에 갇히고 그             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었으면 했다. 그러나 사진을 통한 나의 기억이 언
       무렵 TV에서는 Guns & Roses의 “November Rain” 이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   제나 궤양처럼 쓰리고 아프다. 때로 삭제해버리고 싶을 만큼 통증을 수반하지
       다.                                                     만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안개는 정말이지 화면에서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완벽하게 제거해 준             나는 오래된 나의 그 쓰린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과 “하얀
       다. 이는 온전히 그 화면 모두가 나의 언어로만 채워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침”을 선택했다. 이는 나를 온전하게 그 시간으로 돌려 기억을 반추하는 조건
       그 안개의 시작은 아주 오랜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던 흰 공간에서 대상들이            이니까. 그래서 비와 안개는 나에게 회상의 표식이다.
       이따금씩 스멀스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개는 기억의 존
       재이고 그리고 그 것의 회상은 나를 더 깊은 고립의 세상으로 인도했다.                이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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