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PhotoView eMagazine 2023.9 issu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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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경계’를 넘어서는 사진


       이렇게 일단락된 사진은 작가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 국면을 시작한다. 박정임의 작업에서 다른 작품과의 ‘관계’와 배치를 위한 ‘여
       백’은 사진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사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앞뒤의 사진 그리고 사진 간의 공백을 함께 읽어
       야 한다. 무엇보다 “박정임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요구는 데리다의 ‘파레르곤(Parergon)’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과 작품 밖의 경계를 뜻하는 파레르곤은 흔히 작품을 에
       워싸는 프레임(액자)으로 얘기된다. 해체의 철학자 데리다는 프레임 해체를 통한 새로운 의미 읽기를 제안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작품은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다. 그렇다고 프레임 외부에 있지도 않다. 결국 작품은 안팎의 구분 즉 프레임이 허물어진 경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의 의미는 작품 속에 고정되지 않고, 해체를 통해서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프레임의 해체는 결국 그 옆 작품의 ‘관계’와 배치를 위한 ‘여백’을 함께 읽을 것을 요구한다. 관계와 여백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다
       르게 읽히는 것이다. 이것이 파레르곤을 통해 데리다가 말하는 지연되며 차이를 만들어내는 작품의 의미이다. 기교 없이 다이렉트
       로 꽂히는 정직한 그의 사진에서 필자가 가장 풍부한 사진의 말하기를 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진이 이렇지만, 박정임은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그가 사진장치의 존재
       론적 특성과 이와 연동된 사진의 의미 발현 구조를 정확히 이해한다고 본다. 이것이 박정임의 사진을 통해 파레르곤의 확장된 의
       미를 떠올리는 이유이자, 그의 사진에 발길이 오랫동안 머무는 두 번째 이유이다.




       Ⅳ. ‘결여의 언어’로 말하기


        작가노트에 따르면 박정임의 대상은 언제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대상들은 ‘고요하게 생동하는 욕망의 언어’로 욕
       망을 말한다. 이는 인식 이전의 불확정 상태에서 나오는 ‘결여 그대로의 언어’이기도 하다. 박정임은 작가노트에서 ‘사진을 찍는다
       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을 빌렸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동시에 나의 죽음, 연약함과 무상함을 그들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상의 단단한 사물성과 결여가 낳은 불확
       정 간의 틈새를 박정임의 응시가 파고드는 지점이다. 응시를 통해 획득된 결여의 단면은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작가는 고백한다.


       대상의 사물성에 스며들어 헤쳐놓는 작가의 응시는 치밀하게 계산된 (사진적) 자유로움의 결과로 보인다. 계산된 자유로움은 사진
       장치가 갖는 발언의 폭과 말하기의 한계를 작가가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작가는 응시를 통해 얻은 새로운 이름을 관객에게 강요
       하거나 설득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작가가 얻은 이름조차 결여의 언어로 된 ‘임의의 이름’임을 고백하고, ‘새로운 명명(命
       名)’을 관객에게 요청한다.


       사진은 애초에 대상의 이름 짓기에 적절한 장치가 아니다.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은 소통의 전제가 되는 코드가 끊어진 탈코드의
       기호다. 그러니 발화자가 기표에 실어 보낸 기의가 수신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가 없다. 순간이 방부 처리된 사진 위 이미지는 불
       변하는 기표의 모습이지만, 그 아래로 미끄러져 흐르는 의미 혹은 이름은 유보되고 연기될 뿐이다. 작가가 붙인 이름조차 다음 이
       름을 기다리는 ‘임의의 이름’일 뿐이다.


       박정임은 자기 작업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현명한 작가라고 판단된다. 자신이 무엇을 찍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의 서사를 더해야 하는지를 아는 작가다. 분명한 필요에 따라서 그것들을 여유롭게 조직하고 운영해가는 작가다. 이것
       이 필자가 그를 지목했고,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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