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월간사진 2019년 2월호 Monthly Photography 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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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View  /























                                     비움의 철학




                                     하나의 생각이 끝나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 전
                                     텅 빈 채로 살아 있는 마음 공간을 느껴보세요.
                                     -혜민 스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혜민 스님의 책 속 한 구절이다. ‘텅 빈 채로 살아 있
                                     는 마음 공간을 느껴보세요.’라는 문구가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견
                                     딜 수 없어 한다. 심심해하고, 외로워하고, 결국 고독감에 치를 떤다. 하지만 혜민 스님은 그 시간이야말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사람들은 툭하면 ‘지친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삶의 고요함을 잃어버린 채 살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각을 비운
                                     상태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야 마음의 평화도 또 행복도 찾아온다는 메시지가 2019년 독자들의 무
                                     한 공감을 얻고 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러니 무념무상으로 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각자 노력할 밖에.
                                     한 선배는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도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자전거를 탄다. 이유인즉슨, 페달을 밟는 시간
                                     만큼은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좋단다. 늘 머리가 복잡한 그에게는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힐링
                                     법이지 싶다. 에디터 역시 1년 전부터 TV를 과감히 없앴다. 블라인드도 없애고 간접등 하나만 켜둘 뿐이
                                     다. 실내가 어두침침하니 더욱 고요한 느낌이다. 차분한 분위기는 놀랍게도 머리를 맑게 만들어준다. 소란
                                     스러운 빛과 소리를 비워내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충분히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 선보인 신작을 통해 ‘비움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진가가 있다. 나무 작가로 알려진 이명호다. 그
                                     의 사진 속에는 하얀 캔버스와 나무가 줄곧 등장했다. 캔버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의 존재감은 상당히
                                     컸다. 그런데 이번 신작에서는 캔버스가 텅 비어 있다. 나무가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허
                                     전해 보일 수 있는 풍경. 하지만 그 비움 덕분에 보는 이들은 오히려 그 너머의 무언가를 맘껏 상상할 수 있
                                     게 되었다.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프레임 안에 이것저것 넣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
                                     다. 하지만 무언가를 과감히 빼서 필요한 것만 강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의 이번 신작이 신선
                                     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 어렵다는 ‘비움의 철학’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에디터 | 박현희(편집장) · 디자인 |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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