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월간사진 2019년 2월호 Monthly Photography Feb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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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길과 길 같지만, 결국 지나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그래서 인생이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길을 우직하게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Mes Routes - 나의 길>은 새로운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지
만,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의 회고전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다. 신작인 <Mes Routes - 나의 길>과,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여름방학(Les Grandes Vacances)> 시리즈를 함께 전시하고 있기 때문 베르나르 포콩이 사진사에 도입한 개념이 있었으니, 바로 ‘미장센’이다.
이다. 두 시리즈 모두 ‘길’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먼저, <Mes Routes -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여러 요소를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만들어진 사
나의 길>은 그의 70년 인생을 회고하는 단편 영화다. 길을 따라가며 마주 진.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여름방학>, <사랑의 방> 등은 현대미술에
하는 특색 있는 풍경과 포콩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겹쳐져 있다. 지난 시 서 사진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록이라는 보편적인 역할에
간과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시적인 단상을 감상할 수 있다. 프레임 속 부 서 벗어나, 사진을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체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
유하는 단상들은 이미지 속도를 자유롭게 변형하면서, 사진과 영상의 경 다. 하지만 포콩은 <이미지의 종말>을 마지막으로 사진 찍는 행위를 멈춘
계를 넘나든다. 실제 길 위를 걷고 뛰면서 인생의 길을 돌아보는 것처럼 다. 그리고 이미지들 가운데서 예술적 가치를 골라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
보인다. 그 옆으로는 영화 속 배경이 된 볼리비아, 태국, 페루, 프랑스의 이라고 말한다. 카메라의 자동화와 소형화로 인한 이미지의 대중화를 예
아름다운 길을 담은 30여 점의 사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측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여름방학> 역시 ‘인생의 길’을 말하는 작업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실제 그가 예언했든 아니든, 어쨌든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길이 아닌 마네킹을 이용했다는 점, 그리고 작업 속 시간이 유년시절에 많이 찍고 많이 본다. 사진의 위상이 그저 기록하는 역할로 다시 격하되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은 어릴 적 추억과 지나간 젊음을 떠 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포콩은 “풍경이건 인물이건 사진으로 찍
올리고, 다시 그려내는 데 초점이 맞춰진 사진이다. 이는 작업 기반인 기 고 보면 실망스럽다. 나는 흔적을 통해 사건을 이야기하고 부재를 통해
억을 끄집어내 다시 사진에 박제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베 존재감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흔적도 부재도 보이지 않는,
르나르 포콩의 작업은 공근혜갤러리 공간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인생 오로지 증거만이 남은 사진이 흘러넘치는 시대, 우리에게 사진이란 무엇
의 길’을 돌아보는 두 시리즈가 원형 공간 안에 전시되어 있으니, 계속해 일까. 잠시 숨을 고르고 사진에 관해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느낌이다. 매일 매일의 삶이 전혀 다른 것 2월 24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