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월간사진 2019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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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와 사진의 상관관계
                                                       러시아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 미학이 연상되는 바바라
                                                       카스텐(Barbara Kasten)의 작업이 부드러운 버전으로 리
                                  “                    메이크된 느낌이다. 구성적이고 조형적이면서 동시에 초

                                                       현실적인 것이 참 많이 닮았다.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은 직접 제작            매체를 이용하는 것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혼용하
                        한 조각을 네거티브로 촬영한 다음,            는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 시대성까지 반영한다. 사라 판데
                        필름을 스캔하고, 디지털 색채 전문            어비크는(Sara VanDerBeek)는 ‘발전하는 기술과 그에 따
                        가와 톤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친다.            른 사진의 문화적 위상’, ‘진짜를 본다는 것’과 ‘상상한 이미
                        그리고 레이어들을 겹쳐 최종 결과물            지’의 간극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그는 직접 제작한 3차
                        을 완성한다. 새벽녘과 저물녘의 색            원 정물과 조각을 촬영해 얻은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변형
                        이 감도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공조            시킨다. 최근에는 기하학적 패턴이 드러나는 ‘퀼트’를 소재
                        명이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빛에서             로 작업한다. 퀼트는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나 모사 등
                         탄생한 색은 이미지 가독성을 높이는           을 넣고 바느질하여 누비는 것 또는 그러한 천’을 가리킨
                        데 일조한다.         “              다. 그런 퀼트와 사진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퀼트와 사      새벽녘과 저물녘의 빛
                                                       진 모두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하는 일종의 행위라는 것         ‘빛’을 다루는 여느 작가들처럼,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도
                                                       이다. 실과 바늘, 손재주가 발전했음에도 ‘바느질’이라는        추상적이다. 기술(조각을 만들고, 사진을 후보정하는 등)과
                                                       퀼트의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날로그에        예술의 융합이다. 빛이 선사하는 색과 선의 향연은 관객이
                                                       서 디지털로 기술이 진화했지만, ‘사진 찍는’ 행위 역시 마      보는 행위에 더 깊이 관여하도록 한다. 다만, 그는 작업에
                                                       찬가지다. 한 마디로 ‘과거를 연결하고, 현재를 반영하는        약간의 의미를 부여한다. 사라 판데어비크가 어스름한 시
                                                       것’이다. 사라 판데어비크의 작업은 직접 제작한 조각을 촬       간대의 빛과 색을 이용하는 건 퀼트 및 사진 행위와 깊은 연
                                                       영한 다음, 네거티브 필름을 스캔하고, 디지털 색채 전문가       관이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무엇인가가 전환되
                                                       와 톤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레이어들을 겹쳐        는 새벽녘과 저물녘은 마치 과도기와 같다. 퀼트와 사진도
                                                       최종 결과물을 완성한다.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과거로부터 이
                                                       구성적이고 조형적이지만, 바바라 카스텐과는 대조적으로          어진 퀼트를 역시 과거로부터 이어진 사진으로 표현하기
                                                       조금은 차분한 색이 인상적이다. 새벽녘과 저물녘의 색이         때문이다. 고대 느낌의 석고상과 그릇 등을 촬영하는 것도
                                                       감도는 것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촬영을 위한 인공조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상기하고, 이와 소
                                                       명이 아닌, 주변에 존재하는 빛에서 탄생한 색은 이미지 가       통하는 것이다. 결국, 빛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부재와 존
                                                       독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덕분에 아직은 눈에 보이지만        재를 연결하는 셈이다.
                                                       이내 사라질 것 같은 사진 속 오브제와 패턴에 집중할 수 있      이를 위해 사라 판데어비크는 전시장을 시적으로 구성한
                                                       다. 처음에는 시각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즉각적인 반응          다. 공간에 작업이 따닥따닥 붙어 있으면, 사유의 시간을 충
                                                       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작업을 마주하고 있으면, 오브제와       분히 누릴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패턴의 형태, 공간 등이 표면 위로 천천히 떠오른다. 복잡해      렇기에 그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과 작업 사이를 느슨하
                                                       보이는 형태는 되레 단순하며, 심지어는 희미하기까지 하         게 연결한다. 여유가 있어야 공간 안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다. 이를 가능케 한 사라 판데어비크의 ‘빛 효과’는 존재와      할 수 있는 건 당연지사다. 여느 추상예술을 감상하는 것처
                                                       부재 사이를 유영하게 하는 듯하다.                    럼, 기하학적인 그의 작업 형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가 작업이 제공하
                                                                                              는 환상적인 시공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경험
                                                                                              을 하고, 관찰과 경험, 공간, 시간 등의 키워드를 둘러싼 것
                                                                                              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추상예술 감상의 끝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Sara VanDerBeek
                                                       미국 출생. 본다는 관점에서 ‘진짜’와 ‘상상한 이미지’ 사이의 거리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직접 만든 3차원 정물과 조각 등을 촬영해 얻은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초기 사진술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뉴욕 쿠퍼 유니온 대학교(The Cooper Union of
                                                       Art and Science)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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