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월간사진 2019년 3월호 Monthly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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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Suite>





                 해석이라는 관성                                                 무형의 존재를 자극하다

                 사진가는 자신의 작업에 꼭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그렇다면 보는 이 역시 사진         3월 28일부터 SPACE22에서 열리는 <감각의 경계>는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정경자
                 가의 작업에서 꼭 어떤 ‘개념’ 혹은 ‘해석’을 도출해야만 할까? 흔히 말하는 제도권 예술       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라는 기존의 범주를 구체화한
                 교육에서 작가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작업에 투영할 것을, 또 보          ‘도시’사진들로 구성된다. 작업 방향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사진이 보는 이의 마음을
                 는 이는 그 이야기를 알아서 해석할 것을 종용받는다. 이를 따라야만 예술을 진정성 있          찌른다는 기조는 그대로 유지한다. <감각의 경계>는 ‘자의적 해석으로 선택되고 재구
                 게 대하는 작가와 관람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이러한 강요는 관람객에게 더            성’되는 ‘기억’을 모티브로 한다. 이번에 공개하는 작업은 무분별한 개발로 정체성을 잃
                 영향력(혹은 부담)을 끼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대 시각예술에는 구상과 추상, 실재와          어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도시마다 고유의 기억(혹은 역사)이 있을 텐데, 기억
                 부재 등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정작 보는 이는 여전히 해석 자체에만           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은 도시의 과거는 물론 존재 가치까지 사라졌음을 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조차 사소한 것 하나라도          미할 것이다. 비록 도시의 파편에서 시작됐지만, 작업은 인간의 기억과 감각에 관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 이미지와 마주하면 일단 혼란스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장면을 포착하는 행위에는 사진가의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이
                 평범한 관람객 관점에서 보면, 정경자의 작업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관성에 따라 작         를 받아들일지는 보는 이의 감각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누군가를 둘러싸
                 업을 ‘해석’하려고 시도해보지만, 그녀 작업을 똑 부러지게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           고 있는 무형의 존재를 자극한다면, 작업이 ‘인간의 존재 가치’라는 거대서사로 이어진
                 깝다. 작업의 첫인상은 편안하다. 카메라 렌즈가 지칭하는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리무중이다. 추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            정경자는 이번 전시에서 두 개의 시리즈를 선보인다. <Drifting>은 ‘진짜가 가짜 같고,
                 떤 의도로 사진을 찍었는지 파악이 안 된다. 내러티브가 읽히지 않는 탓일 테다. 분명          가짜가 진짜보다 더 실제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기억(혹은 역사)을 잃은 도시를 보여준
                 직관적인 사진인데 비현실적이다. 사진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다. 그리고 <So, Suite>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호텔 스위트룸의 실내장식과 사
                                                                          물이 갖고 있는 기억(혹은 사연)을 담아낸 작업이다. <Drifting> 속 공간이 과거와 미래
                 모호함으로의 초대                                                가 없는, 즉 존재 가치를 잃은 현재의 공간이라면, <So, Suite>의 스위트룸은 일상의 상
                                                                          처와 기억으로부터 잠시 도피할 수 있는 현재의 공간이다. 두 작업 모두 ‘기억’을 매개
                 정체가 궁금해진다. 이를 위해 보는 방법을 달리해본다. 핵심은 작가가 셔터를 누를 때
                                                                          체로 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 무엇인지, 공간과 사물을 마주했을 때 그녀 주변을 맴돌았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감정의 결을 알아내려는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 감상의 무게중
                                                                          던 감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심을 ‘작가’에서 ‘나’로 옮기는 것이다. 내가 지닌 경험과 지식, 오감을 사진과 동일선상
                                                                          아니다. 앞서 말했듯, <감각의 경계> 핵심은 감상의 무게중심을 ‘나’에게 두는 것이기 때
                 에 놓다 보면 마치 나를 위해 사진이 만들어진 듯한 착각이 든다. 이제야 잡힐 듯 잡히
                                                                          문이다. 정경자의 역할은 그때 그 시간의 감각기억을 사진으로 박제하고 보여주는 것
                 지 않던 무언가의 정체를 알겠다. 그것은 바로 나를 둘러싼 (기억 같은) 무형의 존재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를 수용하고, 다른 의미로 확장하는 것은 오롯이 관람객에
                 주지하다시피 정경자의 작업은 ‘감각’을 기반으로 한다. 그녀는 ‘다가오는 것을 보이는
                                                                          게 달려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시를 한층 더 깊게 즐길 방법이 있다면, 이러한 교감
                 대로 느끼는 대로 풀어내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려 바라보고 담음           이 일어나는 순간 자신의 미묘한 감각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으로써 다른 의미를 찾는다. 순간의 감정은 있을지언정, 사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
                 진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단, 우연히 만난 대상에서 발견한 것들을 자신과 똑같이 받아
                 들이라고 강요하진 않는다. 그저 모호함이라는 틀 안으로 보는 이들을 초대할 뿐이다.
                 그 안을 부유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일은 관람객의 몫이다.            정경자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들과의 우연한 조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는
                                                                          다. 2013년 제5회 <일우사진상>을 수상했다. <우아한 도시>(갤러리 룩스), <Found>(메이크샵아트
                 그녀 작업을 논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실제로 제각각인데,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스페이스) 포함, 총 일곱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감각의 경계>는 3월 28일부터 4월 16일까지
                 이 과정에서 정경자는 사진이 다른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SPACE22에서 열린다. jeongkyung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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