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월간사진 2019년 2월호 Monthly Photography Feb 2019
P. 46

ⓒ 민완기



                 별 그림 빛 그림                                                니 불안감은 더욱 극대화됐다.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한 것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었
                                                                          다. 문득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별 하나하나가 지구를 살아간
                “여기가 우리의 보금자리고 바로 우리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알고,           사람들의 흔적으로 보였다. 오랜 시간 전 별이 죽음을 맞이하며 내뿜은 최후의 빛이 오
                우리가 들어 봤으며,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 우          늘의 지구 하늘에 도달하는 현상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자연스레 별을 바라보던 그의
                리가 확신하는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 … ,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이 태양 빛 속에        시선은 빛으로 확장됐다. 빛의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천문학을 공부했
                떠다니는 저 작은 먼지 위에서 살다 갔습니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고, 결국 사진에 천문학을 결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삶과 죽음의 순환을 빗대는 메타포의 향연이다. 으레 우리는 죽음이
                 1990년 2월 14일,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  라 하면 깜깜한 암흑의 연속일 것이라고 믿지만, 죽음(별의 폭발)은 이내 빛으로 바뀌
                 도 아래 지구를 촬영한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을 본 칼 세이건은 감동에 휩싸여 책을 집         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필름에 변형을 가하더라도 빛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일상
                 필하는데, 그것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지구를 찍은 사진과 이를   사진은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음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기반시설을 주
                 묘사한 글은 ‘지구가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이야기한다.          로 담아냈는데,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삶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불
                 공허함과 허탈함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실 회피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            어, 필름을 땅에 묻는 행위는 땅에서 태어난 인간이 산화 과정(빛에 노출되고, 눈과 비
                 하다. 사진과 글 이면에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등바등 사는 삶 속에서 겸허함을 유         를 맞는 것)을 거쳐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지하라’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 세이건은 인간을 우주 속에서 특
                 권 의식을 지닌 오만한 존재가 아닌, 서로 존중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우주 그리고 개인의 일상
                 ‘별과 빛’으로부터 시작된 민완기의 작업은 기술적·감성적인 면에서 <창백한 푸른 점>
                 과 비슷한 결을 지닌다. 언뜻 보면 공상과학영화 같은 몽환적인 사진이지만, 민완기 역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작업은 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에 서정적인 분위기
                 시 칼 세이건과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 감돌기 때문이다. 덕분에 거부감 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칼 세이건의
                 그의 작업을 살펴보자.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바로            메시지처럼,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다만, 이는 작업이 ‘삶과 죽음’
                 천문사진이다. 망원경과 카메라를 이용해 찍은 ‘별과 달’ 사진을, 일상의 파편이 담긴          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만약 정보가 없다면 작업이
                 사진에 결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산 정상에서 보는 탁 트인 설경을 연상케 하는 사진,          독특한 실험에 집중하는 것인지, 특정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
                 별똥별이 쏟아지는 듯 보이는 장면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 예쁜 이미지로 인해 작가의 메시지를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그는 스
                 아울러 민완기의 작업은 말 그대로 ‘빛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는 빛을 흡수함으로써 이         스로 “아직 생과 사를 다루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최신 작업으로 올
                 미지를 고정하는 필름 프로세스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빛 자체를 포착하기 위해 카메           수록 맥락보다는 사진을 찍고 결합하는 기술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라 없는 사진에 도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현상 과정         민완기 작업의 목표는 우주라는 거시적인 세계와 개인의 일상, 즉 미시적인 세계를 결
                 에서 알코올과 끓는 물을 붓거나, 필름에 스크래치를 내고 펀치로 구멍을 뚫는 등 다양          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작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맬 우
                 한 물리·화학적 조작을 시도했다. 햇빛과 달빛에 노출시키려는 목적으로 4 x 5, 8 x 10     려가 있다. 이상적인 것은 메타포로 가득한 작업의 투트랙(기술적, 감성적)을 적절히 유
                 필름을 땅에 묻어두기도 했다. 이후 필름을 꺼내 현상할 때는 교반탱크에 흙을 넣는 파          지하는 것일 텐데, 현재로서는 그의 관심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무게가 기울어
                 격적인 시도도 했다. 매체 실험적인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진 것처럼 보인다. 지구보다 먼저 탄생한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은 세대와 개념 등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다. 이러한 천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삶과 죽음의 순환                                                작업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포용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 내적 결속력을
                                                                          다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더 거창한 말을 쓴다면 ‘윤회’를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
                 춰져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업의 모티브는 ‘별과 빛’이다. 민완기는 ‘4ㆍ16 세월
                                                                          민완기 천문사진과 스트레이트 사진을 결합,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진가다. 미국 뉴욕
                 호 참사’, ‘동일본 대지진’ 등의 사건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주하게 됐다고 한        SVA ‘Photography, Video and Related Media’ 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공간291 ‘2019 신인
                 다. 여기에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도 죽음이 다가올 수 있겠구나’라는 상상까지 더해지          작가 공모’에 최종 선정됐다. www.wankimin.com

                                                                       084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